周祝瑛 자전

그녀는 협객과 같은 품격을 가진 대학 교수입니다. 어려서 부터 의사가 강하고 약자를 돕길 좋아하는 상냥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학급에서 항상 반장을 도맡아 하던일 외에도 그녀는 피구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심각한 길치로 중학교 개학 첫날 바로 길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마음씨 좋은 택시를 만나 싼값에 얻어타고 학교에 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학 스트레스 속에서도 여러 우등 상장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연합고사에서의 1편 推動搖籃的手 작문에 실수하여 집에서 가출을 하게됩니다. 나중엔 올바른 방향을 잡아 다시 반장을 맡고 체육 대회 원반 경기에서 멋지게 일등을 차지했습니다. 어렸을적 그녀의 꿈은 의사였으나 작문대회에서 상을 탄 기점으로 자신 목표의 방향을 다시 잡게됩니다. 그리고 그해 봄 같은 학교 여선배가 성폭행을 당하는 불운한 일이 생깁니다. 이 사건은 그녀가 성교육 방면에 종사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대학시절엔 학교가 자주 홍수에 휩쓸려 그 덕분인지 4학년땐 어느정도의 수영과 숨고르기를 할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대학 친구들은 그녀가 졸업후 학교장을 될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대학원 시험 실패후에 시골로 내려가 복무하게 됩니다. 그 시절 그녀가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던중 그녀를 태운 택시에서 택시기사가 갑자기 내렸습니다. 그 택시기사는 갑자기 수풀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레 나와 그녀에게 그가 가져온 복숭아 하나를 건냈습니다. 이 기억은 평생 그녀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대학원 생활중 국제 사무 공부에 훌륭한 성적을 얻어 국내에서 최초로 일본 연수기회를 얻었습니다. 5년후엔 교육부 국비 유학생에 뽑혔습니다. 그리고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도 대학원생의 국제 봉사활동에 여러차례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행동들은 미국 대학여성 학회(AAUW)에서도 인정받아 세계평화상을 받는 영예를 누립니다.

대만에 돌아간 후에 박사 학위자로서의 일을 찾는 것은 어렵다고 느낀 그녀는 학계에 남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지금까지 국제동향과 비교교육에 종사해 온 그녀는 대만 교육개혁에 눈을 돌려 2003년 대만대학교(台灣大學)황광국교수를 비롯한 교육진과 「教改萬言書」발표하고 「誰捉弄了台灣教改?」를 저술 하였고 2005년부터 2006년엔 뜻을 함께한 친구들과 함께 16회에 달하는 교육개혁총체진단 포럼을 열고 전면적인 교육개혁에 대해 열의 넘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07 년 하버드 대학 방문 기간 중 을 이용하여 수십 개국에 달하는 교육 개혁 을 연구하고 , 대만 교육의 미래를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여러잡지에 그녀의 대만 사회 에 대한 생각을 적어 두었고 또한 매주 대만교육회를 방문하며 대만의 교육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있습니다.